크리스티안 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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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스티안 볼프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계승하여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는 독일어 철학 용어를 정립하고,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칸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볼프는 엄격한 기하학적 방법에 따른 철학 체계를 구축하고, 이성을 중시했지만,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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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볼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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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크리스티안 볼프 |
로마자 표기 | Christian Wolff |
출생일 | 1679년 1월 24일 |
출생지 | 브레슬라우, 슐레지엔 공국, 신성 로마 제국(현재의 브로츠와프, 폴란드) |
사망일 | 1754년 4월 9일 |
사망지 | 할레 안 데어 잘레, 마그데부르크 공국, 프로이센 왕국, 신성 로마 제국 |
학력 | |
교육 | 예나 대학교 (1699–1702), 라이프치히 대학교 (박사 학위 취득 및 교수 자격 취득, 1703) |
학위 논문 제목 | Philosophia practica universalis, methodo mathematica conscripta (수학적 방법으로 작성된 보편적 실천 철학) |
학위 논문 URL | Philosophia practica universalis, methodo mathematica conscripta |
학위 논문 발표 연도 | 1703년 |
지도 교수 | 에렌프리트 발터 폰 치른하우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서신 교환) |
경력 | |
소속 기관 | 라이프치히 대학교, 할레 대학교, 마르부르크 대학교 |
철학적 관점 및 영향 | |
주요 관심사 | 철학적 논리학, 형이상학 |
학파/전통 | 계몽주의, 합리주의 |
영향을 준 인물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 에렌프리트 발터 폰 치른하우스, 공자, 주희, 왕양명 |
영향을 받은 인물 | 이마누엘 칸트, 쇠렌 키르케고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 게오르크 베른하르트 빌핑거, 요하네스 니콜라우스 테텐스, 에메 드 바텔, 미하엘 크리스토프 하노프, 마르틴 크누첸, 요한 페터 로이쉬, 요한 크리스토프 고트셰트, 모제스 멘델스존, 요한 하인리히 사무엘 포르메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마이어, 미하일 로모노소프, 안톤 빌헬름 아모, 아담 바이샤우프트 |
주요 사상 | 이론철학은 존재론 (제1철학 또는 일반 형이상학)과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 분과 (합리적 심리학, 합리적 우주론, 합리 신학)으로 구성됨 철학 용어 "이상주의"를 만듦 |
기타 | |
사용 언어 | 독일어 |
2. 생애
크리스티안 볼프는 1679년 브로츠와프(당시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예나 대학교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했다. 1703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프라이바트도첸트(사강사) 자격을 얻어 1706년까지 강의했고, 이후 할레 대학교의 수학 및 자연철학 교수가 되었다. 이 시기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교류하며 그의 철학을 접하게 된다.[6][7]
볼프는 할레 대학교에서 처음에는 수학을 가르쳤으나, 동료 교수가 떠난 후 물리학을, 그리고 곧 철학의 주요 분야까지 강의하게 되었다.[8] 그는 철학적 이성을 옹호하며 신학적 진리를 수학적으로 확실한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21년 "중국의 실천 철학에 관하여"라는 연설에서 공자의 도덕성을 칭찬하고, 인간 이성이 스스로 도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경건주의 신학자들과 갈등을 빚었다.[8]
1723년, 플랑드르 선교사들의 저서를 바탕으로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를 공자와 비교하는 강연을 했다.[9][10] 볼테르에 따르면, 볼프의 강의는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을 끌어모았지만,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는 텅 빈 교실에서 강의해야 했다.[11] 결국 볼프는 숙명론과 무신론으로 고발당하여 1723년 할레에서 추방되었다.[8][12]
헤세-카셀의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옮겨간 볼프는 그곳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연구와 강의를 계속했다. 이 사건은 전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철학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수많은 책과 소책자가 출판되었다.[8] 조나단 아이작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 갈등은 18세기 계몽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13]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는 볼프를 옹호했으며, 그의 저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14] 1740년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하자 볼프는 프로이센 학술원에 영입되었고,[17] 같은 해 할레 대학교로 복귀했다. 1743년 대학 총장이 되었고, 1745년에는 바이에른 선제후로부터 '프라이헤어'(남작) 작위를 받았다.
볼프는 1754년 4월 9일 사망할 때까지 강의료, 봉급, 인세 수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많은 학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의 학파인 볼피아니즘은 칸트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독일을 지배했다.[19]
2. 1. 초기 생애와 교육

볼프는 실레시아(현재 폴란드 브로츠와프) 브레슬라우의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6] 그는 예나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곧 철학을 추가했다.
1703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프라이바트도첸트(Privatdozent) 자격을 얻었고,[6] 1706년까지 강의했다. 그 후 할레 대학교의 수학 및 자연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친분을 맺었고(두 사람은 서신 왕래를 했다[7]), 그의 철학 체계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수정된 버전이다.
2. 2. 할레 대학교 교수 시절과 추방
볼프는 할레 대학교의 수학 및 자연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교류하였으며, 그의 철학은 라이프니츠 철학을 수정, 보완한 형태였다.[7]할레에서 볼프는 초기에는 수학에 집중했으나, 동료 교수가 떠난 후 물리학도 가르치게 되었고, 곧 철학의 주요 분야들까지 강의하게 되었다.[8]
볼프는 철학적 이성을 옹호하였는데, 이는 신학을 중시하던 동료들에게는 불경건하게 여겨졌다. 할레는 경건주의의 중심지였으며, 루터파 교리주의와의 오랜 투쟁 끝에 새로운 정통주의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 볼프는 신학적 진리를 수학적으로 확실한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21년, 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중국의 실천 철학에 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공자의 도덕적 가르침을 칭송하며,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 도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8]
1723년 7월 12일, 볼프는 총장 임기가 끝나면서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9] 볼프는 플랑드르 선교사 프랑수아 노엘과 필리프 쿠플레의 저서를 바탕으로,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를 공자와 비교했다.[10]
볼테르에 따르면,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교수는 텅 빈 교실에서 강의했지만, 볼프는 그의 강의에 전국에서 약 1,000명의 학생들을 끌어모았다.[11]
이후 볼프는 프랑케에게 숙명론과 무신론으로 고발당했고,[12] 1723년 할레의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이는 18세기의 가장 유명한 학문적 극적 사건 중 하나였다. 그의 후임은 경건주의자인 요아힘 랑게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국왕의 총애를 받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국왕에게 볼프의 결정론이 인정되면 탈영병은 이미 그렇게 하도록 결정되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국왕을 격분시켜 즉시 볼프를 해임하고 48시간 안에 프로이센 영토를 떠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8]
2. 3. 마르부르크 대학교 교수 시절과 국제적 명성
볼프는 할레 대학교의 수학 및 자연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친분을 맺고 그의 철학을 수정, 발전시켰다.[7]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강의하며 명성을 얻었다.[8]그러나 볼프가 철학적 이성을 옹호하면서 그의 신학 동료들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특히 1721년 "중국의 실천 철학에 관하여"라는 연설에서 공자의 도덕성을 칭찬하고 인간 이성이 스스로 도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8]
1723년, 볼프는 플랑드르 선교사 프랑수아 노엘과 필리프 쿠플레의 저서를 바탕으로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를 공자와 비교하는 강연을 했다.[9][10] 볼테르에 따르면, 볼프의 강의는 전국에서 약 1,000명의 학생들을 끌어모았지만,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는 텅 빈 교실에서 강의해야 했다.[11]
결국 볼프는 숙명론과 무신론으로 고발당하여 1723년 할레에서 추방되었다.[8][12] 그는 헤세-카셀의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연구와 강의를 계속했다. 이 사건은 전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1737년 이전에 그의 철학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200권이 넘는 책과 소책자가 출판되었다.[8] 조나단 아이작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 갈등은 18세기 계몽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13]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는 볼프를 옹호했으며, 그의 저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14] 1737년, 볼프의 'Metafysica'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15]
2. 4. 할레 대학교 복귀와 말년
볼프는 1723년 할레 대학교에서 숙명론과 무신론으로 고발되어 교수직에서 쫓겨났다.[12] 이는 18세기 가장 유명한 학문적 사건 중 하나였다.[8] 요아힘 랑게와 그의 아들이 볼프의 결정론이 인정되면 탈영병을 처벌할 수 없다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국왕에게 주장하여, 국왕은 볼프를 즉시 해임하고 48시간 안에 프로이센 영토를 떠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8]볼프는 작센을 거쳐 헤세-카셀의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갔다. 헤세 방백은 그를 최고의 예우로 맞이했고, 이 사건은 그의 철학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8] 조나단 아이작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 갈등은 18세기 가장 중요한 문화적 충돌 중 하나였다.[13]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는 볼프를 옹호하고 그의 저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했다.[14] 1740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사망하고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하자, 볼프는 프로이센 학술원에 영입되었다.[17] 볼프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18] 1740년 9월 10일 할레 대학교의 임명을 받아들였다. 1740년 12월 6일 그의 할레 복귀는 개선 행렬과 같았다. 1743년 그는 대학 총장이 되었고, 1745년에는 바이에른 선제후로부터 '프라이헤어'(남작) 작위를 받았다.
1754년 4월 9일 사망 당시 볼프는 매우 부유했는데, 이는 강의료, 봉급, 인세 수입 덕분이었다. 그는 많은 학회의 회원이었다. 그의 학파인 볼피아니즘은 칸트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독일을 지배했다. 볼프는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다.[19]
3. 철학 사상
크리스티안 볼프는 독일에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인물로,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 철학계를 주도했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계승하고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했으며, 철학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20]
볼프는 모든 인식이 철학적, 역사적, 수학적 인식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사물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철학적 인식, 사물의 현실화를 증명하는 역사적 인식, 양의 결정을 다루는 수학적 인식을 구분했다. 또한 학문을 합리적 이론학과 합리적 실천학으로 나누었다. 합리적 이론학에는 존재론, 합리적 우주론, 합리적 심리학, 자연신학이 속하며, 합리적 실천학에는 실천철학, 자연법학, 윤리학, 정치학, 가정학이 속한다고 보았다.
볼프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그의 저서는 모두 '...에 관한 이성적 사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의 철학은 명료하고 체계적인 설명을 강조하며, 이성의 힘으로 모든 주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라틴어와 독일어로 저술하여 그의 사상을 널리 퍼뜨렸다.[20]
볼프의 철학 체계는 라이프니츠의 결정론과 낙관론을 유지하면서도, 모나드론은 단순화하고 예정조화설은 형이상학적 의미를 축소시켰다. 그는 모순율과 충분이유율을 철학의 기본 원리로 삼았다.[8]
볼프는 철학을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으로 나누고, 논리학을 두 부분 모두의 서론으로 간주했다.[8] 이론 철학은 존재론을 포함하며, 영혼, 세계, 신에 대한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 즉 합리적 심리학,[25][26] 합리적 우주론,[27] 합리적 신학[28]으로 이어진다. 실천 철학은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으로 구성된다. 볼프의 도덕 원리는 인간 완전성의 실현이며, 이는 계몽주의적 낙관론과 현실주의의 결합으로 나타난다.[8]
칸트는 볼프를 "모든 독단적 철학자 중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했다.[29]
3. 1. 라이프니츠 철학의 계승 및 발전
독일에서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 철학계를 주도했으며, 18세기 독일을 '공자 마니아들의 세상'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철학적으로 독창성은 부족하지만, 라이프니츠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하고, 논문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20] 그는 다양한 분류를 통해 사상을 엄밀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볼프 철학은 명료하고 체계적인 설명을 강조하며, 모든 주제를 이성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는 라틴어와 독일어로 저술하여 유명했다. 그의 영향으로 자연법과 철학은 대부분의 독일 대학교, 특히 프로테스탄트 공국 대학교에서 가르쳐졌다.[20]
볼프 체계는 라이프니츠의 결정론과 낙관론을 유지하지만, 모나돌로지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모나드는 영혼이나 의식적 존재, 단순한 원자로 분리된다. 예정조화 교리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잃지만(중요한 발견적 장치로는 남음), 충분 이유의 원리는 볼프가 철학의 기본 원리로 삼고자 한 모순율에 의해 다시 버려진다.[8]
볼프는 철학을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으로 나누었다. '합리적 철학'이라고도 불리는 논리는 두 부분 모두에 대한 서론 또는 예비 학문을 형성한다.[8]
이론 철학은 존재론(또는 '제일 철학')을 일반 형이상학으로 포함하며,[21] 영혼, 세계, 신에 대한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 구분의 예비 단계로 나타난다.[22] [23][24] 합리적 심리학,[25][26] 합리적 우주론,[27] 합리적 신학이 그것이다.[28] 이 세 학문은 계시와 무관하여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불린다.
볼프는 존재론을 연역적 과학,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 모순율("같은 것이 있고 없을 수는 없다")과 충분 이유의 원리("존재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기본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았다.[31][32]
실천 철학은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으로 세분된다. 볼프의 도덕 원리는 인간 완전성의 실현이다.[8] 현실에서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완전성으로 보인다. 계몽의 낙관주의와 현실주의의 결합은 볼프를 미래의 정치 지도자와 사업가들의 스승으로 만들었다.[35]
크리스티안 볼프는 독일어 철학 용어를 확립했다. 볼프가 새로 만든 철학 용어는 상당수가 현재도 사용된다. 라이프니츠의 표상 개념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상하여 철학을 신학에서 독립시켰다. 따라서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철학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로 불린다.
3. 2. 철학의 분류 및 체계화
독일에서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 철학계를 주도했으며, 18세기 독일을 '공자 마니아들의 세상'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철학적으로 독창성은 부족하지만, 라이프니츠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하고, 논문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20] 그는 다양한 분류를 통해 사상을 엄밀하게 논리적,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볼프는 철학을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으로 나누었으며, '합리적 철학(philosophia rationalis)'이라고도 불리는 논리학은 두 부분 모두의 서론이자 예비 학문(propaedeutics)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8]
이론 철학(Theoretical philosophy)은 존재론(ontology) 또는 '제일 철학(philosophia prima)'을 일반 형이상학(general metaphysics)으로 포함하며,[21] 영혼, 세계, 신에 대한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special metaphysics) 구분의 예비 단계로 나타난다.[22] [23][24]
특수 형이상학 | 설명 |
---|---|
합리적 심리학(rational psychology)[25][26] | 영혼에 대한 학문 |
합리적 우주론(rational cosmology)[27] | 세계에 대한 학문 |
합리적 신학(rational theology)[28] | 신에 대한 학문 |
이 세 가지 학문은 계시와 무관하므로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불린다. 피조물, 창조, 창조주에 대한 종교적 삼분법에 대응하는 이 체계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룬 내용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8]
실천 철학(Practical philosophy)은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으로 나뉜다. 볼프의 도덕 원리는 인간의 완전성을 실현하는 것이다.[8]
3. 3. 독일어 철학 용어 정립
크리스티안 볼프는 독일에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대두될 때까지 독일 철학계를 풍미했으며, 18세기의 독일을 '공자 마니아들의 세상'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철학적으로는 독창성이 적으나, 라이프니츠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하였으며, 논문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옮기는 데 공적이 컸다.[20]볼프는 당시 독일어권 사상계에서 라틴어로 저술되거나 차용어가 대부분이고 독자적인 어휘 체계가 없었던 상황에서, 독일어 철학 용어를 확립했다. 볼프가 새로 만들어낸 철학 용어의 상당수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라이프니츠의 표상 개념을 기초로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상하여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켰다.
3. 4. 자연법과 국제법 사상
볼프 철학은 명료하고 체계적인 설명을 강조하며, 이성의 힘으로 모든 주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라틴어와 독일어로 저술하여 자연법과 철학이 대부분의 독일 대학교, 특히 프로테스탄트 공국의 대학교에서 가르쳐지도록 영향을 주었다. 볼프는 헤세-카셀에 직접 이를 도입하기도 했다.[20]볼프 체계는 라이프니츠의 결정론과 낙관론을 유지하지만, 모나돌로지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모나드는 영혼이나 의식적인 존재, 그리고 단순한 원자로 분리된다. 예정조화의 교리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잃지만(중요한 발견적 장치로는 남음), 충분한 이유의 원리는 볼프가 철학의 기본 원리로 삼고자 하는 모순의 원리에 밀려 다시 버려진다.[8]
볼프는 철학을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으로 나누었다. 때때로 '합리적 철학'이라고 불리는 논리는 두 부분 모두에 대한 서론 또는 예비 학문을 형성한다.[8]
이론적 철학은 존재론 또는 '제일 철학'을 일반 형이상학으로 포함하며,[21] 영혼, 세계, 신에 대한 세 가지 특수 형이상학의 구분에 대한 예비 단계로 나타난다.[22] [23][24] 합리적 심리학,[25][26] 합리적 우주론,[27] 그리고 합리적 신학이 그것이다.[28] 이 세 가지 학문은 계시와 무관하기 때문에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불린다. 피조물, 창조, 창조주에 대한 종교적 삼분법의 대응물인 이 체계는 칸트가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룬 것으로 철학 학생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8]
칸트의 저서 제2판 "서문"에서 볼프는 "모든 독단적 철학자 중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정의되어 있다.[29]
볼프는 존재론을 연역적 과학으로, 선험적으로 알 수 있으며, 두 가지 기본 원리, 즉 모순의 원리("같은 것이 있고 없을 수는 없다")와 충분한 이유의 원리("존재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기반한 것으로 보았다.[31][32] '존재자'는 '결정' 또는 '술어'로 정의되며, 모순을 포함할 수 없다. 결정자는 본질, 속성, 양태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31] '본질'은 존재의 본성을 정의하며 따라서 이 존재의 필수적인 속성이다. '속성'은 본질에서 비롯되고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결정이며, 단지 우연적인 '양태'와 대조된다. 볼프는 '존재'를 다른 결정 중 하나로 생각하며, 존재는 그것이 부족할 수 있다.[33] 존재론은 실제 존재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존재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존재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34]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충분한 이유는 이것의 본질적인 본성을 구성하는 모든 결정에 있다. 볼프는 이것을 "존재의 이유"라고 부르며, 어떤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발생의 이유"와 대조한다.[33]
실천 철학은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으로 세분화된다. 볼프의 도덕 원리는 인간의 완전성을 실현하는 것이다.[8]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간이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완전성의 종류로 보인다. 계몽의 낙관주의와 현실적인 현실주의의 결합이 볼프를 미래의 정치 지도자와 사업가들의 선생님으로서 매우 성공적이고 인기 있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35]
4. 볼프 학파와 반볼프파
볼프는 독일에서 학파를 형성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1737년에는 107명 정도의 볼프 학도가 있었다. 그의 제자로는 튀미히, 포르마이 등이 있다. 볼프의 체계는 새로운 것을 더하기 어려워, 제자들은 볼프 철학의 요약을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바움가르텐은 볼프가 등한시한 미학 영역을 개척했다.
볼프와 그의 학파는 기하학적 방법에 기반한 형식주의로 철학 체계를 완성하여 당시 철학적 교양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학파의 분석과 독단적 태도는 반발을 낳았다. 안드레아스 뤼디거,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크루지브스, 요한 하인리히 람버르트 등이 반볼프파에 속한다. 이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식을 주장하며 볼프의 입장을 수정하려 했다.
4. 1. 볼프 학파
볼프는 독일에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대두될 때까지 독일 철학계를 풍미했던 학파로서 18세기의 독일을 '공자 마니아들의 세상'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철학적으로는 독창성이 적으나, 라이프니츠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하였으며, 논문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옮기는 데 공적이 컸다.[1] 그는 여러 가지 분류를 통해 사상의 형식면에서 엄밀하게 논리적·합리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것을 가르친 점에 공적이 있다.[1]예컨대 모든 인식은 철학적·역사적·수학적 가운데 어느 하나이며, 제1의 것은 사물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제2의 것은 그것을 현실화하여 증명하며, 그리고 제3의 것은 양의 결정에 속한다고 한다.[1] 또 이 분류와 함께, 학문을 합리적 이론학과 합리적 실천학으로 대별한 분류가 있는데, 거기에 의하면 전자에는 존재론·합리적 우주론·합리적 심리학·자연신학이, 그리고 후자에는 실천철학·자연법학·윤리학·정치학·가정(家政)학이 속한다고 되어 있다.[1] 볼프는 각 방면에 걸쳐서 이상하리만큼 많이 저술했으며, 더욱이 형식의 정비와 합리성을 지향하는 볼프답게 독일 문장의 저작은 모두가 <…에 관한 이성적 사상>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다.[1]
볼프는 독일에서 유일하게 생겨난 학술적 파벌인 학파를 형성한 최초의 독일 철학자였는데, 그의 생존 중인 1737년에는 이미 107명 정도의 볼프 학도(學徒)가 있었다고 한다.[1] 그의 충실한 제자로서는 <볼프 학파 철학의 교정(敎程)>의 저자 튀미히(1697-1728)나, <아름다운 볼프 학파>를 쓴 포르마이(1711-1797) 등의 이름을 들 수 있다.[1] 그렇지만 볼프의 체계 자체에는 새로운 것을 첨가할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은 볼프 철학의 적요(摘要)를 쓰는 일에 시종되었는데, 그러한 가운데서 단 한 사람, 볼프에게서 등한시되어 있던 영역(미학)의 개척을 시도한 것이 바움가르텐이다.[1]
4. 2. 반볼프파
볼프와 그의 학파는 엄격한 기하학적 방법에 입각한 형식주의로 철학 체계를 완성하여 당시 철학적 일반 교양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학파의 무미건조한 분석이나 모든 것을 기하학적 증명으로 단정하는 독단적 태도는 거기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낳게 했다. 안드레아스 뤼디거(1673-1731),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크루지브스(1715-1775), 요한 하인리히 람버르트(1728-1777)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모두 실질적인 내용을 갖는 인식이 경험을 기본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주장하여 논리만을 고집하는 볼프의 입장을 수정하려고 했다.5. 평가 및 영향
크리스티안 볼프는 독일어권 사상계에서 독일어 철학 용어를 확립하고, 라이프니츠의 표상 개념을 바탕으로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의 철학은 계몽 사상의 대표적인 하나로,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독일 대학에서 강의되었던 강단 철학의 기초를 이루었으며, 임마누엘 칸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2][3]
그러나 볼프는 철학을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볼프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으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볼프가 분석적 사고만 사용하여 사고 개념이 경직되었다고 비판했다.[1]
5. 1. 긍정적 평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학파를 형성한 사람으로 불린다. 19세기 초 칸트주의가 대두될 때까지 독일 철학계를 풍미했던 학파로서 18세기의 독일을 '공자 마니아들의 세상'으로 만든 주역이었다.[1] 철학적으로는 독창성이 적으나, 라이프니츠의 뒤를 이어 계몽주의 철학을 체계화하였으며, 논문 용어를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옮기는 데 공헌했다.[1] 그는 여러 가지 분류를 통해 사상의 형식면에서 엄밀하게 논리적·합리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것을 가르친 점에 공적이 있다.[1]크리스티안 볼프는 라틴어로 저술되거나 차용어가 대부분이었던, 독자적인 어휘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당시 독일어권 사상계에서 독일어 철학 용어를 확립했다.[2] 볼프가 새로 만들어낸 철학 용어의 상당수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2] 또한 라이프니츠의 표상 개념을 기초로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상하여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켰다.[2] 따라서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철학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라고 불리기도 한다.[2] 볼프는 수학을 학문의 전형으로 삼고 개념적 엄밀성을 중시하여 분석적 사고에 기반한 철학을 구축했다.[2]
그의 철학은 계몽 사상의 대표적인 하나이며,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독일 대학에서 강의되었던 소위 강단 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3] 17세기 후반 독일의 형이상학자들은 대부분 볼프의 제자 혹은 그와 관련이 있었으며, 그들의 저술은 18세기 중반까지 널리 교과서로 사용되었다.[3] 볼프는 또한 칸트에게 영향을 주었다.[3] 칸트는 볼프 학파의 체계성을 높이 평가했다.[3]
5. 2. 비판적 평가
볼프와 그의 학파는 엄격한 기하학적 방법에 입각한 형식주의로 철학 체계를 완성하여 당시 철학적 일반 교양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학파의 무미건조한 분석이나 모든 것을 기하학적 증명으로 단정하는 독단적 태도는 반발을 낳았다. 안드레아스 뤼디거,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크루지브스, 요한 하인리히 람버르트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모두 실질적인 내용을 갖는 인식이 경험을 기본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주장하여 논리만을 고집하는 볼프의 입장을 수정하려고 했다.하인리히 하이네는 "볼프는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어 어떤 학설의 통일성을 완성된 형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일종의 칸막이 세공에 만족했다. 각 칸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배열하고, 잘 채우고, 명확한 라벨을 붙인다. 이렇게 해서 소위 볼프의 독단론이 생겨났다"라고 설명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볼 수 있는 수학적 형식은 볼프에게서는 그 이상의 탐구를 허용하지 않는 도식이 되었다. 헤겔은 볼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의식의 세계를 정의한 사람"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철학적 사고를 사용하지 않고 분석적 사고만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 개념이 산산이 고정되어 버린다고 비판하고 있다. 볼프 철학의 근저에는 "상식"이 있으며, 상식을 단순화한 것이 "정의"로 여겨진다. 헤겔은 "이러한 야만적인 엄밀주의는 통속화되어 결국 신용을 잃고 쇠퇴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5. 3. 현대 한국에서의 평가
크리스티안 볼프는 독자적인 어휘 체계가 없었던 당시 독일어권 사상계에서 독일어 철학 용어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새롭게 만든 철학 용어의 상당수는 현재 한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1]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표상 개념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축하여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켰다. 그의 철학은 계몽 사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독일 대학에서 강의되었던 소위 강단 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1]볼프는 임마누엘 칸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칸트는 볼프 학파의 체계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비판 철학을 통해 볼프의 철학을 "독단론"으로 규정하고 비판했다.[1] 그러나 칸트는 대학 강의에서 자신의 저서가 아닌 볼프 학파 철학자들의 형이상학 서적을 교과서로 지정하기도 했다.[1]
한편, 볼프는 독일인들에게 철학을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볼프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어, 학설의 통일성을 완성된 형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1]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볼프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식의 세계를 정의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철학적 사고를 사용하지 않고 분석적 사고만 사용했기 때문에 사고 개념이 경직되었다고 비판했다.[1]
6. 주요 저서
- ''Dissertatio algebraica de algorithmo infinitesimali differentiali'' (미적분학의 대수적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 1704)[36]
- ''Anfangsgründe aller mathematischen Wissenschaften'' (1710); 라틴어판, ''Elementa matheseos universae'' (1713–1715)
- ''Vernünftige Gedanken von den Kräften des menschlichen Verstandes'' (인간 지성의 힘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12). Logique|로지크프랑스어, 베를린: 1736 (장 드 샹(Jean Des Champs)의 프랑스어 번역본). Logic|로직영어, 런던: 1770 (익명의 영어 번역본).
- ''Vern. Ged. von Gott, der Welt und der Seele des Menschen, auch allen Dingen überhaupt'' (신, 세계, 인간 영혼 및 모든 것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19)
- ''Vern. Ged. von der Menschen Thun und Lassen'' (인간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20)
- ''Vern. Ged. von dem gesellschaftlichen Leben der Menschen'' (인간의 사회 생활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21)
- ''Vern. Ged. von den Wirkungen der Natur'' (자연의 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23)
- ''Vern. Ged. von den Absichten der natürlichen Dinge'' (자연적인 것들의 목적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24)
- ''Vern. Ged. von dem Gebrauche der Theile in Menschen, Thieren und Pflanzen'' (인간, 동물, 식물의 부분 사용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 1725)
- ''Philosophia rationalis, sive logica'' (합리 철학 또는 논리학, 1728)
- ''Philosophia prima, sive Ontologia'' (제1철학 또는 존재론, 1730)
- ''Cosmologia generalis'' (일반 우주론, 1731)
- ''Psychologia empirica'' (경험 심리학, 1732)
- ''Psychologia rationalis'' (이성 심리학, 1734)
- ''Theologia naturalis'' (자연 신학, 1736–1737)
- ''Kleine philosophische Schriften'' (작은 철학 저술, G.F. 하겐(G.F. Hagen) 편집 및 수집, 1736–1740)
- ''Philosophia practica universalis'' (보편 실천 철학, 1738–1739)
- ''Jus naturae and Jus Gentium'' (자연법과 만민법, 마그데부르크, 1740–1748)
- ''Jus Gentium Methodo Scientifica Pertractum'' (과학적 방법으로 다룬 만민법, 1749)
- ''Philosophia moralis'' (도덕 철학, 1750–1753)
- ''Gesammelte Werke'' (전집, 장 에콜(Jean École) 외 편집, 3 시리즈(독일어, 라틴어 및 자료), 힐데스하임-취리히-뉴욕: 올름스(Olms), 1962–)
- ''Oratio de Sinarum philosophia practica / Rede über die praktische Philosophie der Chinesen'' (중국 철학 강연/중국인의 실천 철학에 대한 강연, 미하엘 알브레히트(Michael Albrecht) 편집, 함부르크: 마이너(Meiner), 1985)
- 《인간 지성의 힘과 진리 인식에 있어서의 그 올바른 사용에 관한 합리적 사고 Vernünftige Gedanken von den Kräften des menschlichen Verstandes》 (1712년)
- 《하느님, 세계, 인간의 영혼,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에 관한 합리적 사고 Vernünftige Gedanken von Gott, der Welt und der Seele des Menschen》 (1719년)
- 《인간의 행위에 관한 합리적 사고 Vernünftige Gedanken von der Menschen Tun und Lassen》 (1720년)
- 《합리철학 Philosophia rationalis》 (1728년)
- 《일반 우주론 Cosmologia generalis》 (1730년)
- 《경험 심리학 Psychologia empirica》 (1732년)
- 《자연 신학 Theologia naturalis》 (1736-37년)
- 《과학적 방법으로 논술된 국제법 Jus Gentium Methodo Scientifica Pertractum》 (1740-49년)
- 《자연법 및 국제법 개요 Jus naturae and Jus Gentium》 (1750년)
- 《철학자의 도덕 윤리 Philosophia moralis sive Ethica》 (1750-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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